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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세계

소득세가 없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작은 부유한 나라 모나코 공국(Monaco) - livingin

by 나혼자살아보세 2020. 6. 3.

 

 

  • 기본정보

 

 

모나코는 프랑스의 동남 지중해 연안에 있는 공국이다. 공국은 높은 작위를 가진자가 다스리는 나라라고 하는데 유럽의 중세시대때 시작된것이 아직 남아 있다. 모나코(Monaco)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작은 국가이다. 휴양지로 유명하다. 프랑스계 사람들이 살고있으며 언어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수도는 모나코이다. 면적은 1.9평방킬로미터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 부근의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나라이다. 프랑스의 니스(Nice)와는 18Km 떨어져있다. 모나코의 수도는 모나코이고, 인구는 2019년 모나코 통계청에 따르면 38,100명이다. 공식언어는 프랑스어를 쓰고 영어, 이탈리아어, 모나코어 등을 사용한다. 종교는 국교인 카톨릭교다. 프랑스인이 28% 모나코계인 모네가스케(Monegasque) 원주민이 21% 뒤이어 이탈리아인이 19%가 살고 있다. 국기 모양이 인도네시아와 같다. 폴란드 국기와는 정반대이다. 화폐는 유로를 쓴다. 모나코에는 우리나라 대사관이 없고, 주프랑스대사관이 이를 대신한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다. 여름은 건조하며 덥고, 겨울의 날씨는 별로 춥지 않다.

현재 모나코 국왕은 알베르 2세(Alber II)이다. 1958년생으로 어머니가 미국의 유명한 배우였던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이다. 알베르 2세의 아내인 모나코 왕비는 짐바브웨 출신(10살때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으로 전 올림픽 수영선수인 샤를렌 위트스톡(Charlene Wittstock)이다.

 

 

 

미국의 할리우드 여배우였던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는 모나코의 왕비였다.

 

 

 

모나코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인 1866년 프랑스 건축가 샤를 가니에(Charles Garnier)가 설계한 몬테카를로의 카지노(Monte Carlo)

 

 

 

  • 역사

 

 

모나코의 첫번째 거주자는 고대 인도-유럽 부족인 리구리아인(Ligurian)이다. 모나코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인과 리구리아인 둘다 연관된 모노이코스(monoikos)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다. 리구리아인들은 로마제국 시대 이전에 스페인에서 이탈리아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정착했다. 리구리아인들이 이용하는 해안도로는 훗날 '헤라클레스의 길'(The Road of Hercules)로 알려지게 되었다. 1215년 풀코 델 카셀로(Fulco del Cassello)가 이끄는 제노바(Genoa, 이탈리아 북서부의 항구도시)의 기벨린(Ghibelline)들이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헨리6세(Henry VI)로부터 모나코 지역에 대한 주권을 받아 식민지화하면서 시작되었다. 모나코의 전략적인 위치와 항구에 이끌려 제노바사람들은 즉시 모나코의 많은 바위를 이용해서 요새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제노바인들은 영주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토지 및 비과세 혜택을 부여했다. 그 이후 모나코는 빠르게 성장한 도시가 되었다. 

 

1297년 제노바의 강력한 겔프가문(Guelph family)출신 프랑수아 그리말디(François Grimaldi)와 작은 군대가 모나코를 장악하게 된다. 1301년 그리말디 가문이 추방당하지만 30년 후에 다시 돌아와 그리말디 가문은 모나코를 계속해서 통치하게 된다. (중간에 프랑스 지배하에 있던 1789~1814년을 제외한)

 

첫 공국(公國)의 시조는 찰스 1세(Charles I)로 추방당했다가 돌아온 1331년이다. 그러나 실제로 람베르트 그리말디(Lambert Grimaldi)가 프랑스 국왕 찰스 8세(Charles VIII)를 설득해 공국(公國)의 독립을 인정하도록 설득한 것은 1489년이다. 그때가 되서야 드디어 모나코는 프랑스 지배로부터 완전한 자치권을 얻게 된다. 모나코의 주권은 1512년 루이 14세(Louis XII)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1793년 그리말디 가문은 프랑스 혁명정권에 의해 몰수당하고, 모나코는 잠시 프랑스에 합병되었다가 1814년에 다시 반환된다. 1861년 1월 1일에 프랑코-모네가스케 조약(Franco-Monegasque)에 따라 독립국이 된다.

 

 

 

 

 

  • 음식

 

 

신선한 지역의 농산물과 바다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지역 요리가 발달했다. 모나코에는 많은 음식점이 있고 해산물이 많은 요리가 있다. 식습관 자체가 지중해의 풍부한 해산물을 자주 접할 수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현지 조리법의 영향을 받았다. 

 

 

 

 

 

 

 

 

 

  • 경제

 

 

 

모나코의 경제는 관광, 도박, 은행업에서 성장했다. 모나코의 면세와 소득세가 없는것은 많은 부유한자들을 끌어들였다. 은행산업과 자금관리는 경제부문에서 16%의 수익을 창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름다운 해안과 지중해 기후, 카지노, 화려한 시설들이 관광하며 즐기기에 적합해서 전세계 관광객들을 모은다. 관광산업은 모나코 경제에 25%를 차지한다. 모나코는 관광객들을 위한 놀이터로 부유층의 안식처이다. 부자들에게 유리한 조세제도 덕분이다. 또한 관광은 모나코의 경제를 움직인다. 카지노와 매년 5월에 있는 모나코 그랑프리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다. 모나코 주민들에게는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관광관련 사업은 오늘날 모나코의 주요 경제 요소이다. 은행과 금융 활동은 경제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부분이다. 산업규모가 크진 않지만 제약, 화장품, 밀가루

제분기(flour-milling), 식품 등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앞서 말한 화장품, 화학기계(밀가루 제분기) 등을 수입하고 있다. 

레니에3세(Rainier III)는 모나코의 경제적번영을 가져다 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의 아내인 그레이스 켈리는 예술을 장려하고 소국에 매력을 불어넣는데 큰 역할을 했다. 레니에 3세는 모나코 헌법을 개혁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도박에 대한 의존도를 현재 수익의 9%에서 3%로 줄인 공로를 인정받았다. 

 

 

 

 

 

부동산과 비즈니스 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경제에서 네번째로 중요한 분야를 차지한다. 외국기업들은 공국에 특별한 투자 인센티브를 받는다. 

모나코는 작은 크기의 땅 때문에 사용공간이 항상 제한되어왔다. 1950년대 이후 경제성장과 더불어 인구의 증가는 이 문제를 더욱 부각시켰다. 결국 다층구조를 활용한 구조물을 건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계속적인 관광의 증가에 따른 호텔의 증가는 또 다른 공간에대한 부담을 주었다. 그래서 추가적인 공간확보를 위해서 모나코정부는 바다를 매립하여 사용하는것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 사회 및 문화

 

 

모나코의 문화는 이웃 국가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모나코는 인구가 적고 독특한 경제상황 때문에, 폭력 범죄와 빈곤과 같은 큰 나라들이 다루어야 하는 많은 사회 문제들을 직면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경제성장과 산업 발전이 주요관심사였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며,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나코의 범죄율은 아주 낮다. 그 이유는 전체 인구와 비례해서 법 집행 공무원이 많이 때문이다. 모나코 전국에 걸쳐 보안 카메라를 널리 사용하고 있어서 범죄 활동을 억제시킨다. 모나코는 적은 경찰병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군대가 없다. 프랑스 정부가 모나코의 방어를 책임진다. 교육은 6~16세까지 의무이다. 고등교육기관은 있지만 대학이 없다. 모나코의 문맹률은 1%이다. 

로마 카톨릭이 국교이다. 헌법 23조에 의해 종교 자유가 보장된다. 모나코 정부가 지원하는 건강시스템이 있다. 모든 국민에게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 축제 및 스포츠

 

 

 

모나코는 매년 1월에 열리는 국제 서커스 페스티벌(The International Circus Festival)과 7월에 열리는 국제 불꽃놀이(The International Fireworks)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몬테카를로 거리에서 열리는 포뮬러 원 자동차 경주인 그랑프리 드 모나코(Grand Free de Monaco)는 모나코의 가장 유명한 문화 행사 중 하나로 수 천명의 관중이 모인다. AS 모나코는 모나코 공국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1924년에 창단했으며 현재 프랑스 1부리그인 리그1에 참가하고 있다. 구단주는 러시아의 억만장자인 디미트리 리볼로블레프(Dmitry Rybolovlev)이다. 디미트리는 AS모나코의 2/3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구단주이며, 나머지 1/3의 지분은 그리말디 가문이 가지고 있다.

 

 

 

 

  • 정치
 

모나코 헌법은 통치하는 국왕의 권한 아래 행정권이 있다고 규정한다. 왕위 계승은 국왕의 직계인 합법적인 후손에게 돌아가며, 남성 후손이 여성보다 더 우선된다. 국왕은 외교관계에서 모나코를 대표하고 조약을 체결하고 비준한다. 국왕은 국무원장을 임명하고, 재무와 경제 인테리어, 공공사업, 사회사업 등을 위해 각각 1명씩 3명의 정부위원을 임명한다. 국무장관은 프랑스 사람으로 국왕이 임명하고 프랑스 정부가 선발한 프랑스의 고위공무원 중에서 3년 임기로 선발된다. 국무장관은 외교를 담당하고, 국왕의 대표로서 행정업무, 경찰, 정부협의회를 지휘한다. 정부위원회의 권한 아래 18명의 국가평의회가 있다. 국가평의회 의원은 비례대표제에 근거한 직접 투표로 5년간 선출된다. 유권자 자격은 21세이상이고, 모나코 시민권을 5년 이상 보유해야 한다. 1962년 새 헌법에서 여성에서 투표권이 주어지고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대법원이 설립되며, 사형이 폐지되었다.

 

 

 

 

 

모나코 대성당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왕비가 잠들어 있는곳이다. 그녀는 딸 스테파니 모나코 공녀를 태우고 운전 도중 교통사고로 인해 1982년 사망했다.